나의 이야기

홍매의 기억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3. 3. 01:38



점점 기억을 잃어 갑니다
사람도 잘 알아보질 못 합니다
헛 것도 보이고 자꾸 잠만 쏟아집니다
길을 나서면 영영 다시 집을 찾아오질 못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요양원에 가서 살면 되지요
거기서 새로운 기억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되죠
가족들도 점점 몰라보니까
못 봐도 섭섭하지도 않을 겁니다

내가 못 알아보는 게
그들도 편할 거예요
그럼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끔 한차례 들여다보면 되니까요

요양원에도 봄은 오네요
창 밖으로 홍매가 요란스럽게 피었어요
예전에 문화원 화우들과 화선지에 그리던 매화꽃이 생각납니다

여기는 경기도 화성의 요양원이고요
저는 치매 환자입니다

지금 창 밖에 곱게 핀 매화를 바라 보노라니
옛날처럼 순백 화선지에 한번 그려보고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벼운 사랑  (0) 2024.03.05
홍콩 간다  (0) 2024.03.04
邂逅  (0) 2024.03.02
아말피에 가면  (0) 2024.03.01
2월  (0)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