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덥던 계절이 물러가고
어느새 산 언덕에 망초꽃 만발하고
지상에 내린 가을이 오고 있다
구절초, 쑥부쟁이가 바람에 흔들려 향기롭다
저기, 저 푸른 나무들의 호우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산사의 종소리가 산등성이를 돌아나가고
목탁소리 은은한 계절이라 풍탁소리마저 청아하다
지상의 소리는 나를 울리고
세속의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다시 오는데
낡은 몸으로 계절을 맞는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계절은 무던히도 나를 밀어내 준다
꽃이 지면
들판에는 까마귀 울고
적막하게 눈이 내리고
어느 이름 없는 역사의 역참에나 들었으면 좋으련만
무쇠 난로에 참나무 타는 냄새에
방랑자들이 모여들고
동지섣달 긴긴밤 너나 할 것 없이 어우러져
폭설 속에 다 파묻혔으면 좋겠다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더 가면 될까
이승의 길은 무심하고 무참해서 가이없고
계절은 경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