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이 잘박잘박 발끝에서 흩어지면서
벨소리는 딱 한번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누구였을까
종희는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무엇이 두려운지도 몰랐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조차 움직이지를
않는다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가 떠나고
그녀가 서 있었다
무너지지 못해서 허리가 꺾여지지 않아서
무릎이 굽여지지 않아서 그냥 서 있었다
잘박잘박 빗물 흩어져 신발소리가 들리고
피아노 선율이 스며 들었다
물처럼, 눈물처럼, 비처럼, 바람처럼, 그늘처럼,
웅켜진 두 주먹처럼, 백정의 칼날처럼ᆢ
종희는 소설을 뒤부터 읽고있는 중이었다
'호텔 프린스' 에는 자기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좋았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절박한 사람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폐허가 된 도시 위를 걷는다
가을비가 '딩동'하고 벨을 눌렀다
종희가 "네~"하고 나가려다 말고 멈췄다
그러자 딱 한번 벨이 울린후 긴 정적이 이어졌다
누구였을까...
다음날 아침
'棕姬'는 12층에서 뛰어내려 1층 출입문옆 화단에
누워있는 것을 누군가가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