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왜 무서워하는지 알겠어요
모두 죽음처럼 잠들어버린 지금
한알의 씨앗처럼 움트고 있는 무언가가 슬픈 이유겠지요
저 먼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고 동굴 속 어둠처럼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우면
그건 아마 당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은 영혼마저 지워버리고 혼돈의 꿈을 잉태하지요
나는 알아요
이 밤을 왜 혼자서 지켜내야 하는지를요
크랄의 거미처럼 기다려야 한다는 걸요
이 가을이 쓸쓸하지 않다면
그건 당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겨울의 문고리를 붙잡고 싶은
혹독한 계절의 밤을 생각합니다
멀어지는 그대의 사랑을 붙잡고 싶지는 않아요
대답을 듣고 싶지도 않답니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변주이기에 참아 냅니다
울지도 않기로 합니다
아직 눈물샘에는 깊은 우물의 정토가 살고 있으니까
이 밤을 묻어두기로 합니다
위험한 정사가 끝난 이들이 잠든 시간을 사랑합니다
첼로의 미각처럼 떨리는 운율을 사랑합니다
맹그로브 원숭이가 내게 가을 구절초를 꺾어 줍니다
사랑의 고백은 바오바브나무의 정조 같아요
지금은 머무는 시간
밤이란 혼절의 시간이지만
그 무게는 가볍고 단순해요
마법에 걸린 오후처럼
지옥의 문에 갇힌 나의 감옥처럼
썩은 빗자루를 운전하는 마녀처럼
혼음의 깊이를 생각합니다
깊은 동맥의 자리처럼 혈흔이 터져서 꽃이 되고
얼음 같은 당신에게서도 가을은 피어 나나요
쓸쓸할 수 없어서 차라리 잘 됐어요
어둠의 자식들은 늘 교만 하지요
차라리 몽정의 밤은 화려했어요
수음의 깊이는 가벼웠지만
밤의 무게에 눌려 늘 슬프답니다
지금은 겨울의 그믐밤 폭설을 사랑하렵니다
밤은 검은 속내로 나른 깨우고 슬픈 시간 속으로 인도합니다
그래도 사랑할 겁니다
변절의 계절
그 밤 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