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스티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12. 9. 13:33

 

 

 

미스티

 


속초 앞바다는 성난 황소처럼 거친 파도를 방파제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소주를 마시는 당신의 몸속으로 내가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화이트 와인 'G7 샤르도네'가 먼 이탈리아 언덕에서 녹아내려 곁으로 왔을 때
나는 '퓨메'의 향기로운 몸에 마음을 들쑤시고 있었죠
우리는 아주 오래된 방, 오래된 침대 위에서 서로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마케도니아 침실입니다.
서로에게 잘 맞는 체위로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사랑의 속삭임을 나눈 뒤,

반쯤 졸음에 잠긴 목소리로 서로를 위로한 후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의식의 담을 넘어 부유하는 우리의 행위는 부초를 닮았습니다
서로 등을 돌린 채 마시는 방 안의 공기는 그동안 살아온 내력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숨을 쉬지 못했어요
당신은 능금 같은 힢에 힘을 줍니다.
풍요로운 젖가슴, 튼실한 허리에 리볼버 권총의 차가운 탄환으로 무장했어요
창밖으로 거친 파도가 밀려오고 거센 바람에 방향을 잃은 바다새가 휘청 거립니다
겨울빛 황혼은 종횡의 화살촉처럼 커튼을 파고듭니다
오늘 우리는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요
그동안 예비했던 자살 연습은
당신으로 인해 당분간 보류합니다
묻지 말아요, 우리가 어떻게
마른 입술과, 부은 젖가슴과 튼실한 허리와 숲 속 둔덕을 헤매고 있었는지
수많은 정사와 섹스를 왜 부정했는지
누구의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동해로 떠나던 날 '남애리'의 어부는 가리비를 잔뜩 구워놓고 핏빛 와인을 땄어요
가리비의 육즙이 당신의 혀 맛과 비슷했어요
파랑 위로 둥둥 떠 다녔어요
진실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잠자던 세포들이 들고일어나 반란을 일으키며 육신 사이로 짠 바닷물이 범람하고

번들거리는 쇄골 위로 눈물이 쏟아집니다
반쪽들이 하나가 되기를 소망할 때
처절한 아우성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만약 당신이 박쥐 동굴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우리는 서로의 목을 졸랐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영혼을 묶어 버리고 코끼리의 등에서 낙타의 사막으로 인도하는

사막 여우의 울음을 운 당신은 신기루였어요
당신의 몸은 아쟁처럼 슬피 울고 내 머리와 팔과 다리를 잘게 잘게 부쉈지요
영혼과 육신은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서 족쇄 같은 구속입니다
성애는 인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만들고
그 진실을 고백합니다
육체는 꽃이고 탐미적인 영혼은 죽지 않고 살아남지요
꽃을 키우는 사람은 꽃이 되고 싶어 합니다
꽃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꽃을 키웁니다
물치항 물미거지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몰살했기 때문입니다
탈출합니다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서 '남애리' 바다 언덕 양철집으로
바람과 파도를 업고 육신을 이전하도록 등기를 마칩니다
生이 샘물처럼 깊어서
한 사람만 사랑할 순 없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할수록
목마름은 더 심해졌다
앞으로 누구를 더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숙명이라면
사랑만 하다 죽으리라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샘물 같은 그리움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0.12.11
혼자 놀기  (0) 2020.12.10
운다  (0) 2020.12.08
사랑하다 죽는다  (0) 2020.12.07
내겐 김치 같은 친구가 있다  (0) 20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