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늘 출발하면 안 될까 해서 전화했지ᆢ
수업은 오전에 끝났으니까 지금 출발하면 저녁에 술 한잔하고 물회도 먹고
늦게 바닷가에서 놀다가 아무 민박집에서 일박해도 좋을 듯 해서ᆢ
외박한지도 꽤 오래 세월이 흘러서 하루 낯선 곳에서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맘도 들고ᆢ
오늘 출발하면 안 될까?"
내일 단풍구경 가기로 친구와 약속했는데
강의 끝나고 나와보니 날이 얼마나 쾌청한지
앞산 뒷산 관악, 청계산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가깝게 느껴본 적 없는 산 모습이다
문뜩 내일 떠나기로 한 약속을
오늘로 당기면 안 될까 하는 마음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안 받는다
부재중 찍혔을 텐데 기다려도 회신이 없다
그러다 해는 기울고 저녁이 됐다
외박은 틀렸구나
외박하기 좋은 나인데도 외박도 안 되는구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누가 관심 두는 사람도 없고
군중 속에 혼자가 됐을 때
스멀스멀 밀려오는 고독
어차피 누구나 혼자가 되고
혼자 가는 거니까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래서 일찍부터 혼자 노는 방법을 수업료 내고 배우지 않았는가
혼자서라도 어디든 가서
오래된 외박을 해보고 싶다
친구에게선 늦도록 전화가 없다
내일 가긴 가는 건가ᆢ
그놈의 역병 탓으로 모처럼 가는 나드린데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