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건재한 삼류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12. 20. 10:23

 

 

 


건재한 삼류

 

 

나의 변방은 늘 조용하다
몇몇 길손이 기웃거리지만 이내 제 갈 길을 가는 초라한 노포
나의 공황은 딱 그 시점에 닿아있고
늘 변방 점포에는 철 지난 저잣거리처럼 한적하다

맑은 눈물을 흘릴 듯한,
조금은 덜 영특한 이들이 한 자락 바람이라도 떨구면
그게 반가워 함박웃음 짓는 능력 없는 자의 넋두리여
거기 까지만 깨닫고 살자
그릇이 그런 걸 어쩌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럭저럭 삼류 시인으로, 화공으로 사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사주에 욕심 없는 무지렁이라 노후에는 걱정 없이 산다 했으니 피식거려도 할 말 없다
물론 그릇이 작으니 퍼 담을 여력도 없다

그런데 왜 아쉽고 서러운가
속으로 강물이라도 흐르는가
버겁고 아득해도 삼류라는 타이틀도 쉽지 않은 서열이니
닥치고 조용히 살란다

성에 낀 창밖으로 밤새
소복하게 내린 동지섣달 눈이 감잎 푸르던 가지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럼 됐다
어느 천재 시인의 말처럼
너의 현란한 행간에 나의 무지를 슬쩍 얹어놓고 딴청 피우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됐다
구업을 쌓았으니
돌담 쌓듯 공덕이나 하나 더 쌓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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