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로
승화원에서 나오면서 겨울
대공원을 걸었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여전히 웅대했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서 한 식경쯤 해바라기를 했다
겨울 햇볕이지만 바람이 없어 한가롭고 따듯했다
이제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으니
편히 일찍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친구는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무슨 심사인지는 모르겠다
초지쯤 지나가는데 들판 위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인간들은 해가 갈수록 초라해 지지만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다
산다는 게 그저 무상할 뿐
승화원에서 한 줌의 재가 되신 이는 3살 모자란 백수를 누리셨다
그 세월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데 아직도 갈 길은 머나먼 고향처럼 아득하다
이제 그만 온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노인네가 노인네의 초상을 치르는 걸 보고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한다
귀갓길, 만갖 상념이 뒤죽박죽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