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옥희가 돌아왔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3. 3. 11. 14:12



저문 저녁 언덕배기 위에서 여자 둘이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다
하나는 옥희
하나는 순덕이

로드 보드를 타려고 헬멧과 장갑, 보호대를 착용하고 집을 나서는 길이다
언덕을 내려가다 이들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오십 년 만에 보는 것 같다
"옥희야" 하고 불렀다
그가 해맑게 웃으며
돌아본다

어디에 사냐고 물었다
'길림'에 산다고 했다
그러니 평생 볼 수가 없었나 보다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잘 산다고 했다
중년이지만 하나도 늙어 보이지 않는다

옥희는 옛날 산동네 시절 나를 제일 좋아라 따르던 옆집 宋 氏네 세 딸 중에 둘째 계집애 였다
너무 예뻤다

우리 집이 간석동에 땅을 사서 이층 집을 짓고
산 동네를 떠날 때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무렵인 것 같다
그 이후로 살면서 옥희를 어디서든 한 번도 마주치거나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산 동네에 가보면 옛 집들은 하나도 없고 고층 아파트 촌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옛날 집터가 어디쯤 인지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산 꼭대기에는 옛날 살던 70 년대 산동네를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생겼다
나무와 톱밥, 구공탄을 때던 그 시절이 재현되어 있다

옥희를 만나서 반갑고 설레었다
한참을 얘기하고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연락하자고ᆢ
그리고 돌아서 가는 그를 돌려세워 생전 처음 입 맞춤을 했다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그리고 그녀가 '길림'으로 돌아갔는지는 잘 모른다
거기서 잠을 깼으니까
그 꿈속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도 다녀 가셨다

오늘 오십 년 만에 옥희와 순덕이와 부모님을 만난 기념으로 복권이라도 사야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3.03.13
저무는 저녁  (0) 2023.03.12
나무 닮은 사람  (0) 2023.03.11
타이거 커피  (0) 2023.03.09
오이도 손님  (0)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