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헌 나만 남겨두고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3. 3. 14. 06:32



엄마 옷장 속에는
해마다 사드린 내복과 목도리와 양말과 털모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끼느라 늘 얇아지고 늘어진
구멍난 것들만 입고 사시다가
그리고 이렇게 고스란히 모두 두고 가셨다

늘 헌 것만 가지고 사셨던 어머니
새 것들은 아끼다가 모두 남겨두고 가셨다

아끼다가 똥 된다더니
헌 나만 두고 가셨다
어머니는 날 새 것으로 생각하셨을까

엄마의 옷 장에는
엄마의 일기장처럼
새 옷가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헌 나는 이대로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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