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가 사랑했을까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3. 6. 26. 09:38



착한 남편 때문에 바람을 피웠다
자정에 들어왔다 새벽 일찍 나가는 남편은 늘 바빴다
수많은 날 독수공방은 사람을 우울하고 지치게 했다
그리고 우연히 나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나를 천국과 지옥으로 데리고 다녔다
집보다 바깥세상은 황홀하고 좋았다

술집 여자를 사귀던 남편은 외박을 자주 했다
뭐라 하지 않았다
나도 맞서서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나쁜 남자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나를 끔찍이 사랑해 줘서 나도 그를 사랑했다
방콕, 이스탄불, 파리, 뉴욕, 쿠알라룸프루, 그라나다, 나짱, 삿포로
나의 화양연화였다

남편이 퇴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아이들은 다 출가했다
둘째는 뉴욕에서
첫째는 밴쿠버에서 산다
이제 나쁜 남자와도 헤어졌다

우리가 했던 사랑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천국과 지옥이었을까
우리는 진정 사랑했었을까
왜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사랑했을까
나는 그때 누구였을까
나를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가 사랑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나의 곁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공범자들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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