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不眠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2. 20. 09:07



머리맡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잠 안 오는 밤에는 천장만 바라봐야 하니까
불면의 밤엔 한 권의 시집이나 연서가 필요하다

오늘처럼 창밖으로 비라도 내리면
무심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사랑과 멸망의 서사시 같은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 같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

밤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불멸의 늪으로 인도한다
비는 우뢰 소리를 내며 귓전을 때리고
가느다란 미명의 소음이 폭포수의 울음으로 변하는 긴 어둠의 터널

얇은 시집하나 펼치고
연한 글 귀를 읽으며
스르르 눈을 감으면
깊은 나락의 호수에서 피어나는 꽃들
페이지마다 꼬물꼬물 살아나는 향기가 좋다

머리맡의 책이 은혜롭게 밤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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