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박시인과 온양댁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3. 12. 09:23



온양댁은 평생 박 씨 남편을 부양하며 살았다
박 씨는 평생 벌이를 해본 적이 없고 글만 읽고 詩만 썼다
박 씨의 직업은 백수 또는 시인이다

온양댁은 온갖 험한 일을 해가며 돈을 벌고
남편을 부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둘 사이엔 자식이 없어서 단출하게 두식구만 먹고살면 그만 이었다

온양댁은 남편이 시인이라서 좋았다
집에서 글을 읽고 쓰는 모습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시인의 아내로 사는 것이 좋았다
밖에서 궂은일 허드레 일을 해도 힘겹지 않았다
돈 벌어 오는 것보다 시 쓰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남편이 시인이라서 너무 행복했다


재작년 온양댁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시인은 매일매일 아내를 향한 그리움에 사모곡을 쓴다
변방의 무명 시인을 평생 뒷바라지만 하다가 간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고 고마웠다

박 씨가 삼십 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
구구절절 아내를 그리워하는 사연들이 들어있다
첫 시집을 내고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시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온양댁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뻐할까 궁금하다

사실 시인의 아내들은 악처가 많다
시인들은 돈을 못 벌어오기 때문이다

박시인의 고향은 전라도 순천
나이가 올해 환갑이다
온양댁 나이는 올해 예순셋이  된다

아내 살아생전 환갑잔치도 못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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