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치아름빠르삐驛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7. 9. 16. 10:45

 



                한치아름빠르삐驛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웅덩이에 빠진 핸드폰의 진흙을 열심히 닦아냈다

                급한 마음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핸드폰의 전원을 켜자

                삐빅~ 소리를 내며 기기는 곧바로 다운 됐다

                '한치아름빠르삐' 역에서 전철을 타기전

                화장실에 들러오던 그녀가 역전 광장에서

                어떤 여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던 광경을 나는

                역사 창문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다

                그녀가 만나고 있는 여인은 우리 문학모임의

                회원인 '류드밀라' 인듯 보였다

                그녀가 행사 팜플렛인듯 보이는 종이를 가방에서 꺼네

                건네며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있는 사이

                갑짜기 내가 타고 있던 버스가 출발했다

                안돼! 그녀를 기다려야 되는데ᆢ

                업친데 덮친격으로 버스는 목적지와 전혀다른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실수로 버스를 반대 방향에서 잘못탄 모양이었다

                스톱! 버스를 잘못 탓어요 제발 내려 주세요!

                차안이 떠나갈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지만

                버스는 아랑곳않고 이미 제 갈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정거장을 가서 간신히 버스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터질듯 꽉찬 승객틈을 비집고 나오기란

                마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쉽지가 않았다

                간신히 출구를 찾아내린 이름모를 정류장은

                지붕도없는 노상 벌판이었고 때마침 억수같은

                쏟아지는 빗줄기는 방망이로 어깨를 두드릴 정도로

                아팟다

                그때 한순간 퍼붓는 빗속에 핸드폰을 그만

                진흙 웅덩이에 빠트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오 신이시여ᆢ

                열심히 손수건을 꺼내 액정을 닦아냈지만

                이미 핸드폰은 흙탕물이 뚝뚝 떨어지고

                물텅벙이가 되버린 상태였다

                그녀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어쩌나ᆢ

                다시 역광장으로 돌아가야하는 반대방향 버스는

                먼 벌판에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이 죽어서 이미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다

                광야에서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나는 절망해야 했다

                그녀는 상황도 모른채 기다리다 지쳐 원망을 퍼부으며

                '한치아름빠르삐' 역을 떠날것이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다 늙은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조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한순간 핸드폰이 웅덩이에 빠져 연락두절이

                된다는게 이런 돌이킬수없는 운명을 만들어 놓다니

                어이가 없었다

                한식경후 비맞은 강아지꼴로 되돌아간

                '한치아름빠르삐' 전철역에서 그녀의 행적은

                찾을길이 없었다

                번호가 기억나질 않는다ᆢ

                핸드폰에 입력된 그녀의 전화번호를 외워놓질 못한게

                불찰이었다

                그렇게 영영 이별이었다

                변명도 못한채 헤어진 그녀는 앞으로 나를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갈까

                사랑하는 그녀를 그렇게 덧없이 떠나보내고

                핸드폰을 다시 손에 잡지 않았다

                세월이 가고 나는 시베리아 벌목공들이 사는 움막에서

                참혹한 生을 마감 한다

                나는 헤어진 그녀만을 평생 기억하며 여생을 마쳤다

                2019년 '카라예바'의 자전적 소설 <사라진 愛人>이

                유작으로 발표된다

                그녀는 죽기전까지 '한치아름빠르삐' 역에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기다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나는 그때 전철역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왜 뜬금없이 버스를 탓을까

                그리고 그녀를 찾지않고 왜 시베리아로 갔을까

                통합검색에도 나오지않는 '한치아름빠르삐' 驛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 곳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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