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억속에 먼 그대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1. 24. 23:45


 




            기억속에 먼 그대


             

            간밤에 문밖으로 눈이 내렸어요

            어느핸가 오호츠크해 앞 해변

            눈밭에 쓸어져 한참을 정신 놓은 적도 있었지요

            삿뽀로 2월의 눈은 온화 했어요

            지금은 먼 기억속으로 사라져버린 그해 하코다테의 폭설은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덮어버릴 정도로 굉장했지요

            젯소에 모래를 섞어 초벌해둔 캔버스에 아크릭 물감을

            덕지덕지 얹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질감 표현을 위해 붓 대신 나이프를 썼지요

            겨울바다를 향해 서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은 삭풍에 날리고

            테트라포드 위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위태롭게 그려 나갑니다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십여년이 넘었네요

            인간의 뒷 모습은 묘한 여운과 질감과 정서가 깃들어 있어서

            즐겨 그리게 됩니다

            기억이 쇠퇴해져 어제부터 뇌 영향제를 복용하기 시작 했어요

            아이디 비밀번호와 통장 인증번호도 자꾸 잊어버립니다

            약속 일정도 까먹을때가 있고 일주일에 한번있는

            강의시간 마져도 놓칠까 위태롭습니다

            먼 기억속에 그대는 오롯히 남겨져 있습니다

            죽을때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 일까 무척 궁금 합니다

            올 겨울은 大寒 추위도 없었고 요양원의 그늘은 한껏

            포근 했습니다

            가끔 친구가 찾아오지만 그가 누구인지 낯설어 보일때도

            있습니다

            정신줄 놓기전에 친구 자화상이나 하나 그려줘야 겠어요

            그대에게 보낸 테라포트위에 겨울 여인은 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대도 곧 잊어질지도 모르지만

            위대한 유산은

            내가 기억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대리인에게 당부해 놨지요

            그대였으면 좋겠습니다

            올 겨울에도 하코다테에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땡땡거리며 눈발속을 달리는

            빨간 전차를 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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