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혼자도 잘 산다 2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1. 19. 20:20

 




            나혼자도 잘 산다 2


             

            졸혼을 너무 일찍 했다

            벌써 삼십년이 훌쩍 넘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졸혼이란 말이 생기기도 훨씬 전이었으니 별거가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장미의 전쟁'속 두 주인공보다 더 치열하고 열심히 싸웠다

            상처는 깊어지고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해서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 이르러

            서로는 만신창이가 됐다

            그렇게 시작한 각방 쓰기가 삼십년이 지났고 지금은 각방이 오히려 당연히

            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졸혼 30년차 고수는 이 계통에 선구자겸 베테랑이 됐다

            연기자 백일섭씨가 졸혼 생활로 매스컴에서 회자가 되기도 했지만 나에 비하면

            쨉도 안되는 소리, 그야말로 새발의 피 '조족지혈' 이다

            주위에서 아는 사람들 더러는 나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부러워하는 인간들도 있다

            허나 나는 마누라 등쌀에 주눅들어 눈치밥 먹고사는 인간들을 보며 자유로운

            내 혼족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자위해 왔다

            죽지못해 사느니 오히려 죽는게 훨씬 낫다고 공처가 친구들에게 침튀기며 강변한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여행을 즐기며 꼴리는 대로 산다

            시집도 출간하고, 그림 강의도 하고

            가고 싶은 여행지를 어디든 날아 다니곤 한다

            설레이는 여행길은 삶은 가치를 늘 엎그레이드 시켜주곤 한다

            졸혼은 남은 인생을 자유롭고 가치있게 살도록 도와주는 편법의 장치다

            같이 붙어 살만큼 살았으니 "남은 여생은 서로 간섭없이 각개 전투하며

            하고싶은 대로 날 위해 살아보기"가 졸혼의 목적이고 가치이다

            올해는 가고 싶은 곳을 더 자유롭게 많이 날아다닐 작정이다

            집에서 손주들 케어하느라 무릎팍 부서지는 내 친구들은 1박2일 일정 조차도

            제대로 못간다

             

            요즘 마나님들은 친구들 만나서 놀고 문화센터 뭐 배우러 다닌다고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손주들은 퇴직한 남정네들 몫이 돼버린지 오래됐다

            애만 낳으면 친정집 근처로 모여든다

            직장생활 한다고 노인네들 피를 말리고들 있다

            자식이 웬수다

            낳아 키우고 가르치고 집얻어 제금 내줘도 또 빌붙어 부모 등골을 빼고 만다

            그렇게 한 세월이 꽃잎지듯 갔다

            싸울 가치도 없는 사람과 싸울 가치도 없는 일로 삶을 유기한 댓가는 참담했다

            생의 가치없는 방치는 불행했다

             

            사연마저 없는 이가 있을까

            저마다 가슴속에

            사연 하나씩은 심고 살겠지

            때로는 울 수 없어서 가슴만 젖고

            때로는 숨고 싶어 가슴만 태우는

            그런 속앓이 하나쯤

            가슴 한켠에 품고 살겠지

            산다는 게 녹록치 않아

            쉽게, 쉽게 살 수도 없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허망해서

            애탈 때가 한두 번 아닐 테지

            그렇게 살다보면

            세월은 어느새 서리 내리고

            문뜩 어느 날

            ‘회심곡’이 맘에 와 닿는 날

            그날은 저무는 저녁놀조차

            예사롭지가 않을 거야

            살다보면 그렇게 혼자 지쳐서

            술 한 잔 놓고

            넋두리만 웅얼거릴 때

            사연들은 깊이깊이 속으로만 숨고 살면서

            사연 없이 사는 이가 누구 있을려구

            누구든 저마다

            말 못할 사연 하나쯤은

            깊은 속에 묻어두고

            웅웅거리며

            그렇게들 아마 살고 있을 거야

            어디 나만 그렇겠어

            다들 그렇겠지

            (김낙필 詩, "그렇게 살고 있을 거야 다들"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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