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죽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2. 7. 01:15


 



              죽비

               


              죽비[竹篦]소리를 감히 어디다 갖다 대느냐

              천하디 천해 온갖 더러운 세상물 묻혀갖고 어디라고 찾아 왔느냐

              큰스님 일갈에 지레 오줌을 찔끔 지렸다

              그렇게 나무꾼 보살로 십년을 살고 머리를 깎았다

              스님은 과거를 묻지 않았고 늘 자기 무릎밑에 두셨다

              무서리 밭에서 하얗게 얼어버린 배추 밑둥처럼 살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사랑이 어느날 떠나갔다

              풍경소리 저무는 해너미 저 산너머

              어딘가에 그녀가 저녁상을 차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뜨신 봉노방처럼 윗풍이 세도 여인숙 들창이 덜컹거려도

              거침없이 달디달던 사랑이 파랑처럼 지나갔다

              목탁소리만 괴괴한 산사의 밤중

              새벽은 영영 올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그믐밤 포구 포장마차에 이십촉 전구 밑으로 소라랑 갯장어

              굽는 냄새가 시오리길 절마당까지 바람타고 올라왔다

              삶은 마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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