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베이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8. 16. 11:16

베이다

요즈음엔 왜 자꾸 베이는지 모르겠다
깍두기 무 썰다가 검지 베이고
가지 볶음 하다가 엄지손톱 베이고
대파 썰다가 베이고
어묵 썰다가 또 베이고
손가락 성할 날이 없네
조심조심 해도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아
몸에 중심도 자꾸 흐트러져 비틀거리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두렵네
사람에게 베이는 것이 제일 아픈데 그럴 나이는 아니고
손가락 베이는 것이 제일 쓰리고 아프네
큰 몸뚱이 중에 손톱만 한 상처가 이렇게 쓰리고 아프니
앞으로 큰 상처를 만나면 어찌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되네
풀죽쑤어 고춧가루 불리고 새우젓, 멸치액젓 넣어
깍두기 한통 담아놓고 아점을 먹네
사시사철 묵은지만 먹다가 제일 손쉬운 여름
깍두기 한통 담아놓고 가슴 뿌듯하네
고추장 멸치 볶아 오이짠지와
쌀뜨물 부어 끓여놓은 눌은밥 감사히 먹네

이젠 사람에 베이는 상처 없어 좋으나 칼질이
예전만 못해 서럽네
누구를 베는 일보다
나를 베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더욱 쓰리고 아픈 것은 손가락뿐만 아닌가 하네
모든 게 세월의 상처려니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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