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쳐간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12. 22. 08:08

 

 

스쳐간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머니의 애인과
아버지의 애인이 스쳐간다

아들의 생은 지구본을 돌아
온 세상으로 나아가고
아빠와 엄마의 생은 이미 한 바퀴를 돌아 환생의 자리 섰다
아들의 삶만
체바퀴 돌듯 돌아간다

동굴 벽화에 새겨진 고래와 낙타와 코끼리
수렵하는 부시맨의 활시위를 지나서

신처럼 새겨진 나이테의 연륜처럼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꼭 붙어있자
연리지의 몸통처럼 풀리지 않게
팔과 다리와 뿌리를 묶어놓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가 놓이도록
우리는 어차피 고독한 섬

스쳐간다
대지에 풍화가 쌓여 길이 사라져도
엄마와 아빠와 애인과 나의 생이 광야 위로 굴러간다
'게르'의 밤하늘로 쏟아지는 별처럼

여정이 끝나는 지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평선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뿐
그러나
그 너머 발칸의 아드리 해
출렁이는 보스포루스 해협
먼 수평선까지

모든 것은 운명이었다
팽나무 가지에 걸린 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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