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났을 때
우리가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마음 쓰는 것은
각별한 연정 때문 만은 아니다
먼바다를 돌아오는 고깃배가 풍랑과 싸우며 분투해서 얻은 소출이 소중하듯
우리의 삶도 못지않게 치열하고 격렬했다
사람이 늘 그리웠다
이제 그 싸움을 끝내려 한다
한 배를 타 보려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종착역에 다다라서야 겨우 빈곤한 가방을 열어 보인다
고해의 바다에 던진 낚싯줄을 걷어들이고 잡은 고기마저 놓아주고 나면 비로소 느끼는 평온함
그렇게 섬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름도 없는 '나'라는 섬
피 튀기는 전쟁에서 얻은 것은
수많은 상처와
지워지지 않는 상흔뿐이다
이 세상에 인간처럼 모질고 악한 물상은 없다
약육강식,
동물의 왕국보다 더 잔혹한 살기를 장착한
사람이란 무기가 인간이다
남은 사랑으로 버티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산다
아니면 영영 섬이 되던지
바람이 되던지
아니면 머리 깎고 삭발을 하던지
해야 산다
사랑할 자격도 잃은 한 인간이
빗속에 떠 내려가는 쓰레기처럼 밀려 밀려 닿는 곳
사람이 사람을 위해 사는 곳
그 어디에도 정 붙일 없는 곳
눈 펑펑 쏟아지는 '사평역' 근처 일까
사위가 어두워지더니
그 사평역에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