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비린 소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12. 14. 00:12



그 소설은 무겁게 출발했다
화재가 나고 병원에서 탈출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뭐 이래 재미없게
쓰는 사람의 의식이 너무 뚜렷하면 넋두리가 된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작가는 자신의 오류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품 한 바가지를 쏟아내고 책뚜껑을 닫아 버렸다
비린내 나는 것들에게 비웃음을 던지고 나는 이불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내 방이 무한한 우주라는 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 비린내 나는 강을 유유히 오르는 잉어 떼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생은 때도 없이 앙탈 부리는 시기를 거쳐서 흘러간다
상처 입고 좌절하고 새 살이 돋으면서 불혹을 넘어간다
소설이 중반에 이르러 소리지르기 시작한다
눈밭 계곡으로 떨어져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대한 자연 속으로 스며들고 싶어 질 때 철이 난 걸까
생이 비리 다는걸 아는 이가 있을까
그런 사람과 종일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덮는다
팔리지 않고 울기만 할 책
억만금을 줘도 못 잡는 게 세월이라든데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
그렇게 병이 깊어졌다ᆢ
<rewrite2018>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는 사랑  (1) 2022.12.16
떠난 뒤  (0) 2022.12.15
안개 같다  (2) 2022.12.13
파스  (0) 2022.12.12
913동 다람쥐  (0)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