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청(喪廳)이 차려지고
흰 국화꽃 위로
영정 사진 속의 내가 웃고 있다
어느 늦봄 사과나무 아래서 꽃을 목에 걸고
해맑게 웃는 사진이다
조문객들이 보인다
국강이가 오고
석범이, 수광이, 명석이, 성룡이, 석득이, 연근이, 병우, 병문이, 황구, 환두가 보인다
그림 동아리 회원들과
대학 동기, 문학 동인들도 보인다
여동생과 형님 조카들도 보인다
포천 매부, 큰누이도 있다
오남이는 안 왔고
충희도 안 왔고
기복이도 안 왔다
안 와도 괜찮다
죽은 내가 뭘 알겠는가
불타서 사라지면 그만 일 텐데
그러니 안 왔나 보다
그러려니 한다
죽고 나니 하늘 아래 동네가 푸르다
살던 동네도 보이고
자동차도 보이고
내가 걷던 산책로 천변도 보인다
시냇가에 청둥오리도 백학도 보인다
죽고나니 안 보이는 것이 없다
다 보인다
사람의 마음도
깊이도 됨됨이도 다 보인다
살아생전 내 궤적들도 보인다
상청 아래 모인 이들이
살아 생전 얘기들을 하며 얼굴이 불콰하다
저승사자가 보면
제 순서들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아무 물정 모르는 물상(物像)들 같을게다
죽어보니 알겠다
제각각 속들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나는 여한 없이 살았으니 슬프지 않소
그대들은 남은 세월 동안
보시들 많이 하고 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