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봉숭아 꽃물 들이기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8. 26. 15:11

 

 

 

봉숭아 꽃물 들이기

 


먼저 떠난 작은 누이가
이 맘때면 봉숭아꽃 따다가 명반섞어 절구에 빻아서
손톱마다 비닐조각으로 감싸서
바느질실로 꽁꽁 매주던 기억이 난다
울밑에서 봉선화, 채송화, 백일홍, 다알리아, 칸나, 분꽃
이런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났는데
지금은 볼수가 없다

화려한 꽃들만 꽃이 아닌데
순박하고 다정스런 이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이 많으신 경비 아저씨가 옛날 분이신지라 아파트 화단에 봉숭아 꽃을 심으셔서
옛날 생각하시는 분들이 너도나도 따 가셨다
내일 모래쯤이면 너도나도 손톱이 봉숭아 꽃물로 물 들을 것이다

손톱이 자라서
깊은 겨울 지나고 내년 봄쯤이면 초승달처럼 끄트머리만 남겠지
그동안은 누님 생각하며
봉숭아 꽃물 손톱을 보며 지낼 수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봉숭아 꽃물이 추억을 실어다주는데
어느새 삶은 강물 같이 흘러서
멀리도 와 있다

하룻밤 자고나면 고운 꽃물이 들겠지
시골집 뒷뜰 장독대 옆에 곱게 피던 시절 꽃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
아, 그리움이여 사랑이여
내 나이가 얼만데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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