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켜는 저녁
세월이 무상하게 흘렀다
촛불 하나 밝히는 일처럼 경건하고 고요하게
부서지는 영혼
언젠가 젊은 내가 거리를 방황하고
혼자라는 게 두려워 숨던 황야에서
인생이라는 과제는 결코 쉽지 않았다
두 번 죽을 번하고 살아난
선택의 순간은 운명이었다
전투병의 임무를 마치고 퇴역 군인처럼 낚싯줄을 드리우면
강물이 나를 자꾸 바다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해거름 저녁노을이 붉어도
내 마음은 간데 없이 허전하다
그래 촛불 하나 더 켜자
오늘은 어디에 낚싯줄을 던져볼까
강을 지나 바다로 가볼까
바다 끝까지 가볼까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까지
노 저어 가볼까
바오바브나무 아래 지는 석양을 보러 갈까
언젠가 어디서라도 좋을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맞은 적 없는 예감은 늘 나를 외롭게도 했지만
촛불 하나 켜는 일이
켜켜이 쌓인 영혼의 먼지를 털어내는 소중한 일이 되길 빈다
자, 이 저녁
촛불 하나 더 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