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흐르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9. 21. 07:35

 

 


흐르다

 


성철 스님은 입적하실 때
"나는 죄가 많아 지옥으로 간다" 하셨다
평생 구도의 길을 가시던 큰 스님이
스스로 지옥불을 자청한 까닭이 무엇일까
곰곰이 곱씹어 본다

그렇다면 나도 지옥 가야 맞다
극락 갈 놈 하나 없다
스스로 낮춰 낮게 낮게 흐르는 물처럼 겸허하게 산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분의 겸손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높으신 분은 항상 낮은 곳에 임하신다

나는 오늘도 길을 간다
정처 없는 길이다
떠나온 길이 너무 멀어 돌아가지 못하고 그저 내일로 내일로 갈 뿐이다
먼바다 끝에서 만날 어떤 조우를 기대하면서

큰 스님 말씀은
지옥이 극락이고
극락이 지옥이라는 것
만사는 제 마음 쓰기에 달렸다는 일침

낮게 더 낮게 흐르며 가야지
그렇게 스며들면 큰 바다를 만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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