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어가는 에스프레소 잔에 각설탕 하나를 넣고 녹기를 기다리는 처럼 무료한 일은 없다
벽을 타는 담쟁이 넝쿨을 열심히 찍는 작가는 빛의 형태를 채집해 표현하려 하지만 실상은 그림자를 채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부리에 걸린 사람처럼 가끔 흔들리는
헤어질지도 모를 연인들의 습성처럼
아, 지루한 일상으로 눈을 감는다
희망없는 사랑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하다는 것
매혹은 자신이 숭배하는 냉담함에서 온다는 것
상처를 만들고 고통을 주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누군가가 말해주길 바랬다
희망없이 무작정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던지 가능하고
그 일은 절대 참담하지도 서럽지도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때
심한 배뇨증을 참고 견디며 천정을 바라보고
창가를 바라보고
백건우의 브람스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창밖의 기이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한파에 얼어버린 한강의 얼음판을 상상한다
오늘이 드라마 공모 마감일이니 마감시간 전에 원고를 보내야하고 오후에는 그림패 정기전 작품을 떼는 날이고
패거리들의 저녁 만찬을 즐기는 날이다
그리고 음악 속에 누워있다
뱃속으로는 강물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다
여기가 뱃전이었던가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사랑한다는 편지를 읽고 또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가버리는 감정이 세월이라는 것을 천천히 알게됐다
멀어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져버리는 서글픈 숙명을 가진 것들을 사랑해야했다
늘 너는 나를 젖게 했다
내가 너를 천천히 적신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