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
먹구름이 몰려온다
비 구름이다
창밖으로 비바람도 분다
불을 안 켜고 어두운 채로 앉아있다
청 단풍나무 끝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나는 끄떡도 없이 앉아있다
고무나무가 아프다
자리를 창가 쪽으로 옮겼더니
신열을 앓는다
잎이 떨어진다
있던 곳이 이리 소중했던가
나는 그 자리가 없었던가
손 발이 다 떨어졌는데
빨래를 걷는다
곧 쏟아질 비를 맞을 차비를 한다
낼 모래면 立秋
어젯밤은 선풍기 없이도 잤다
새벽녘엔 홑이불도 찾아 덮었다
한 계절도 임무를 다 한 것 같다
무상하다
비가 쏟아진다
새 한 마리 급히 높은 지붕 위로 날아간다
내 마음까지 급해진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도 별수 없이 기운을 꺾는다
그래, 만물이 모두 그런 거다
떠나는 계절
삶도 계절처럼 흘러가고
식은 찻잔을 렌인지에 다시 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