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사전적인 의미로는
'추운 겨울에, 유리창이나 벽 같은 데 김이 서려서
서리처럼 허옇게 얼어붙은 것'을 말한다.
성에가 끼면 그 아름다움과 더불어
밖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왜 성에란 제목을 사용하였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성애'이야기인데 말이다.
혹시 시치미? 내숭?
아니면, 눈이 쌓여 철저히 외부와 고립된 산 속
어느 외딴집에서 일어난 일,
그 단절을 성에라고 표현한 것인가?
아니면 '性에 대한 보고서'의 뒷 말을 빼버린 것인가?
이 이야기는 세 그룹이 이끌어간다.
약혼자가 있는 옛 연인을 만나 여행을 따나는 연희와 그 연인 세중
세계를 꿈꾸고 남으로 귀순하여 산 속에서 살다가 죽은 남자의 일기장
산 속의 비밀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청설모와 참나무, 그리고 바람
언뜻 추리소설인가도 싶다.
연희와 세중은 외딴집에서 의문의 시신 세 구를 발견한다
그 죽음의 의문을 추론하는 연희와 세중.
하지만 연희와 세중은 시신이 주는 공포감 속에서
사마귀처럼 상대방을 먹어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절정의 섹스를 교환한다.
성애의 극치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 섹스의 비밀을 참나무가 이야기한다.
자연은 욕심이 없다고? 천만에.
수없이 외도를 꿈꾸는 동물의 세계.
숲을 점령하기 위해 엄청난 열매를 맺는 참나무.
그리고 엄청남 씨앗들을 생산하는 식물들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언제부턴가 하나의 아내와 하나의 남편이라는 구속을 만들어놓고
그 구속을 넘나들기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세구의 시신의 비밀도 결코 인간에게 들킬 수 없는 언어로
참나무와 청설모, 바람에 의해 이야기된다.
여자와 남자는 우연히 산 속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하며
사실상의 부부로 살아간다.
여자는 남자의 이웃이었던 사내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준다.
밥을 같이 먹으며 겨울나기 준비를 같이 하는 셋은 공동체이다.
남자와는 집에서 부드럽고 여유로운 섹스를 하고
사내와는 나무를 하러가는 사이,
남자가 잠깐 비운 사이 급하고 격한 섹스를 한다.
사내와의 섹스 광경을 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용인한다.
그러던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고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생활하던 남자가 태아의 아빠로 자리매김하게되고
그 임신으로 외톨이가 된 사내의 소유욕은
평화로워보였던 세 명의 공동체 생활을 무너뜨리게된다.
낫에 의해, 도끼에 의해 세 명의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최고의 질서라고 자부하였던 일부일처제의 허술한 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연희와 세중
그 시신들을 치우며 고립된 산 속에서 돌아온 뒤에도
아내가,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만남을 이어간다.
시간과 공간, 사람과 자연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문가적이라고 할 만큼의
깊은 심리묘사로 이끌어가는 성에 대한 분석이
한 편으로는 오싹하게까지 만든다.
완전한 성, 완전한 사랑은 환상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 그에 대한 믿음까지도 갖게 만든다.
그 환상은 꿈꾸는 자와 동떨어져 머무는 것이 아니고
꿈꾸는 자가 만드는 것이기에 그의 것이기도 하다.
ㆍ
ㆍ<펌>
이름아침 詩를 쓰다가 창가에 핀 성에꽃을 봤다
15년전 소름돋아 읽었던 김형경의 '성에'가 생각났다
[성에 - 김형경 / 푸른숲 / 2004.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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