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지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9. 1. 21:41

아버지

일제 강점, 사변, 광복, 사일구 격변의 시대를 살며
그 격랑을 신문지 하나로 읽으시며 늘 조용하시던 아버지
떠나신 지 벌써 사십 년이 되셨네
퇴근하시면서 늘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셨던 아버지
그 안에는 사과도 들고 홍시도 들고 참외도 들고 복숭아도 들고 센뻬이 과자도 들어 있었는데
대문 앞에서 길가를 바라보고 있다가 아버지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봉지 속을 살피곤 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 아버지는 자식들 가르치느라 평생 점심 한 끼를 늘 굶으시며 사셨다
자식들이 장성해서 자리 잡을 만 하자 갑자기
서둘러 돌아가셨다
고생만 하시다 덧없이 가셨다

살면서 아버지를 닮아
나도 검은 봉지를 들고 다니는 것이 똑같다
친구들은 검은 봉지라면 쪽팔린다며 질색팔색을 하는데
나는 아버지를 기억하면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

나이 들어가며
아버지를 행적을 자꾸 닮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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