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流氷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9. 10. 00:02

 

 

 


유빙

 


식어간다는 것은
다 됐다는 것
종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식은 밥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

바야흐로
태양도 식어가고
지구별도 식어가고
여행자의 발걸음도 식어가는 것이다
너를 향한 내 마음도 식어 유빙이 되어 간다는 것

식는다는 것은
외롭고 초라해진다는 것
비폐해 진다는 것인데
얼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방바닥이 식어 냉골이면
몸도 마음도 시리고 아플 텐데
괜한 걱정부터 앞 세운다

세월이 가면 모든 물상들이 식어 간다는 것을 뒤늦게 깨우친다

내게도 열정 넘치던 때가 있었는가
호우시절은 여우비처럼 순간들을 몰고 흘러갔다

불씨가 남았어도 태울 장작이 없다
남은 재들마저 바람 불면 홀연히 사라져 버릴 지점
식어버린 찻잔을 덥히러 종종걸음을 친다
아, 나는 이 찻잔처럼 뜨거웠던 적이 없었구나
기억이 없고 추억만 남아 있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 조금씩 식어가고
너도 나를 서서히 잊어갈 즈음
우린 계획된 대로 서서히 유빙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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