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愛慾을 버리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3. 3. 26. 19:19



나는 저장강박장애를 갖고
있다
쓰지 않고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늘 끼고 산다
들일 줄만 알지 버릴 줄을 모른다
몇 해를 벼르고 미루고 하다가
오늘 결심하고 정리를 단행했다

족히 40년 된 올드보이와
청춘 때 입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재활용 수거함으로 보냈다
일 차로 순모 외투, 실크 티셔츠, 마 바지, 가죽 재킷, 점퍼, 양모 털모자, 청바지 등등
역사를 버렸다

병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버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버리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 차로 가방, 신발류를 정리해 버려야 한다
가방 30개, 신발 20개 정도는 정리하려 한다

겨울 것들을 보냈으니
이제 여름옷들도 미련 없이 보내 버려야 한다
안 입고 아껴 두었던 분신 같은 것들이지만 무거운 짐이려니
훌훌 털어 버려야만 한다

몇 해를 벼르고도 버리지 못한 애욕의 껍데기들이여
부디 잘 가라
저기 남지나해 어느 동네 누군가가 입어주면 고맙고
아니면 면포, 공장용 걸레가 되어도 괜찮다
태워져서 연기가 돼도 어쩔 수가 없는 미련의 찌꺼기 들이다

결국 마지막엔
내 몸뚱이만 남을 것 임을
그마저도 태워질 흔적임을
잘 안다
오늘부터 강박장애를 떨치고 남김없이 버려버릴 생각이다
몸뚱이만 남겨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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