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말이든 써야 하는데
도무지 떠 오르질 않는다
스톱, 멈춤의 시공 안에 있다
음악은 흐른다
재생의 음률이니 전원을 끄지 않는 한 계속 흐를 것이다
흐른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
썩지 않는 개념이다
그러나 배터리가 방전되면 멈출 것이다
강물이 흐른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겸손한 흐름이다
알프스의 물과 대서양에서 만나면 하나가 된다
서해의 물도 언젠가는 그곳에서 만나겠지
사람의 길도 흐른다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
외나무다리도 있고
아우토반도 있지만
사람의 속으로는 하나의 길만 존재한다
스치고 비껴가는 인연들의 길에 사람이 서 있다
부식되면 사라지는 환원의 날에 글을 쓴다
무막한 슬픔의 손가락으로
안간힘을 쓴다
적요한 시간들을 불러 그 멈춤의 시간을 쓰려고 발버둥 친다
나도 부식되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