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날
저 먼날들이 찾아와
저무는 해의 발꿈치를 잡고 애원한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해도 갈것들은 통트게 간다
동해 일출을 마다한지 벌써 십수년
해너미나 해돋이가 무슨 소용이랴
그져 죽치고 앉아 탁주 반병 말아먹고 TV앞에서
조는 일이 일상사이니
오고가는 길손들도 외면하고 깊이 틀어박혀 숨죽이는
일이 사명이다
발빠른 이들은 강릉이며 삼척 앞바다로 줄달음 치는데
거기 빨간 등대위에 갈매기는 간곳도 없다
꼰대 소리 듣기싫어도 들어야지
삶의 방식들이 바뀌어 세상이 변하고서야 천둥번개
소리를 듣는다
이대로 개벽이라도 되어야 새순들이 돋으련만 쓰레기들만
남루하니 길행조차 험하다
잠깐 졸다가 창밖을 보니 어스름속에 흰눈이 제법 날린다
초대받지 못하는 행적으로 한해를 날리려니 닥아올
천행이 두렵다
멀리서 119 싸이렌 소리가 상념을 부순다
누가 또 죽어 나가는가
죽어 나기만하고 새로 살아나는 것이 없는 작금의 세월이
나를 세상밖으로 밀어낸다
저 멀리 미시령에 눈발 날리는 소리가 들리고
운자당 당모의 바튼 기침소리도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