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머리에서 멀어진 기억은 망각하지만
육체는 기억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는 배신해도 육체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뼈저린 역설이다
몸은 잊어도 될 일을 왜 그리도 오래 시리게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죽고 나면 육체는 먼지가 되고 영혼만 살아남는다는데
나는 육체의 기억이 지워지는 날이 죽음의 날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람의 먼지로 날려 갈 수 있으니까
그래야 완전한 이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종착역이 가까워진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이제야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모든 것을 망각할 수 있는 거다
우주의 나이처럼 긴 시간이 지나면
존재는 어디쯤에 떠돌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한낱 티끌 같은 인간의 육체를 인연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린 그렇게 용서조차 못한 채 살아가고 소멸하고 만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못 만나고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만나고 사는 게 인생인 듯싶다
그러니 늘 허기져
모든 것을 지우려는 그 간절함으로
사랑, 그 격정만을 기억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래서
그런데 몸의 기억은 당신을 지우는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명징하다
ᆢᆢᆢ
먼 데서 자박자박 그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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