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등불을 끕니다 / 김낙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5. 9. 26. 07:40



               

              등불을 끕니다

               

              밤새 밝혀 두었던 불을 끕니다

              날이 밝아오기 때문이죠

              간밤에 무얼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어디로 헤메 다녔는지

              산인지 들인지 강가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납니다

              그져 노란 수은등이 내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낙엽이 지는 날엔 이렇게 등불을 밝혀두고

              길을 헤멥니다

              비라도 내리면 나의 밤은 더 깊어가고

              돌아갈수 없는 길가에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길섶엔 무서리 내리고 허수아비 어깨에도

              살얼음이 집니다

              이렇게 길을 잃고 헤메는 날에는

              세상엔 아무도 없고 나 하나 뿐이죠

              다들 어디로 숨어 버렸을까요

               

              내가 혼자 숨어버린거 였어요

              등불에 심지가 다 타버려 힘겨운 불꽃을

              곶추 세우고 아침을 기다립니다

              가을밤은 깊고

              한정없이 길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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