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룸 2042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1. 14. 10:33



룸 키를 꽂자 이내 불이 밝혀졌다
캐리어를 벽쪽으로 밀어넣고 투원 베드 건너
창에 가려진 커텐을 먼저 걷어냈다

혹시 강이 보일까
바다가
아니면 거대한 숲
도시의 야경
기대와는 달리 어둠 뿐이었다

아침에 누워서 동이 트는 해돋이 풍광을 본 적이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 오는 망망대해를 본적도 있었다
안개에 쌓인 강 줄기를 타고 오르는 범선을 본적도 있었다

여행 중에 예약된 방의 뷰에 따라 여행의 질이 사뭇 달라지느니
행운의 여신은 항상 내편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그러하질 못하다
늘 행운이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내일은 부디
끝없는 야자수 밀림이라도 펼쳐주면 좋으련만
이국의 밤은 자동차 경적 소리만 요란하다
창문을 굳게 닫고 실내등을 소등한다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나고
적막하다

시트가 이질적이고 차다
살균제 폴르마린 냄새가 스며 있다
송장처럼 그 안으로 들어간다
오랜동안 여행하면서도 늘 잠자리고 서툴고 생경스럽다

내일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잠을 청한다
어디선가 나즈막한 뱃 고동 소리가 들린다
꿈속 일까ᆢ

늘 낯선 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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