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름 눈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9. 28. 08:44




아카시아 꽃그늘이 그렇게 추울지 몰랐다
한여름이 가슴을 파고들어 눈발을 날릴 줄은 몰랐다
연옥의 길이 아픈 줄은 알았다만 세상의 길이 닿아있는 줄은 몰랐다

포구를 떠난 배들이 귀가하는 저녁
꼬리문 물결이 슬플 줄은 몰랐다
그대가 내 그림 앞에 서서 노을이 되었을 때 알았다
이별은 예정된 운명 같은 것일 거라는 예감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그러다 어느 날 홀연히 창공에 배회하는 솔개연에서
그대 얼굴을 떠올리는 우연을 만나고
아, 그렇게 시끄럽게 울던 여름도 물색없이 가는구나

배곶포구 앞바다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소래로 가는 배들을 본다
꽃들은 다 지고 꽃술만 살찌는 날에
탁주 한잔 안주도 없는 저녁
건너 LNG선에 불이 환하게 들어오고
삶의 자리 걷어야 할 시간
여름눈이 시리게 온다

뻘밭을 배회하는 새들도 어둠에 묻히는 시간
투명한 눈이 내린다ᆢ<rewrite2020>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한 섬, 고재열 씨  (0) 2024.09.30
아름다워서 슬픈  (0) 2024.09.29
눈을 감으면  (18) 2024.09.27
안아봐야 한다  (0) 2024.09.26
  (0)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