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무릎 꿇는 일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3. 31. 00:36

 

 

 

무릎 꿇는 일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이자카야 점원들은 수치심이 없었다
손님은 왕이라는 신념으로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는 것은 굴복을 의미한다
손님에게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시한다
허나 그들의 속 모습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불과하다

삼전도 굴욕처럼
우리는 무릎 꿇는 일을 수치로 생각한다
졌다는 표시, 살려 달라는 애원,
용서를 구하는 짓임으로

무릎을 쉽게 꿇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치욕스런 행동을 쉽게 하는 사람은 가면일 수가 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금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생 무릎을 꿇어보지 않은 사람은
안온한 삶을 보낸 사람이다
하루 종일 무릎을 꿇으며 주문을 받던 삿포로의 이자카야 술집을 회상한다
눈높이를 맞추려는 부단한 노력을

참 무릎을 잘 꿇는 나라의 신민 들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무릎을 꿇는 종족이다
우리는 무릎 꿇는 일에 목숨을 거는 백성들이다
휘지 못해서 꺾일 줄 밖에 모르는

그러나 우리에게 삼전도의 굴욕적인 일이 조선을 살렸듯이
어쩌면 그들에게도 무릎 꿇는 일이 살기위한
또 다른 하나의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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