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연 선생님이시죠
아실지 모르지만
저는 김연화 씨의 둘째 딸 되는 서린이라는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느닺없이 전화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3개월 전에 혈액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 중이셨으나
현재 상황은 회복될 가망이 없으십니다
의사의 소견은 금주 안으로 가족들 모두 소천(召天)을 준비하라는 의견입니다
헌데
어머니께서 선생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연락을 부탁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대면 아실 거라고ᆢ
한참을 망설이다 민망하지만 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됐습니다
두 분께서 어떤 인연인지는 말씀을 안 하셔서
저희는 사연을 잘 모릅니다
이곳은 대서양 건너 먼 나라이니까
마지막으로 통화라도 원하시는 듯 하니
어머님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가능하시면
조만간 전화 한 통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가시는 분의 소망이시니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죄송스럽습니다
모를리는 없는
잊혀진 이름이었다
어느 시절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준 고마운 사람이다
망설이다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마음을 고쳐먹고 용기 내어 그네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발신음이 한참을 가다가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아, 네~ 여기 서울인데요
둘째 따님 좀 바꿔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지난번에 전화했던 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선생님이시군요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머님이 어제 새벽에
소천하셨습니다
조금만 일찍 전화 주셨으면 통화하셨을 텐데 아쉽네요
미안합니다
미안은 무슨
늦게 전화한
내가 죄송할 따름이지요
그렇게 나는 또 다른 業을 쌓고 말았다
연화 씨
나를 추억해 주어서 고맙소
부디 영면하시오
나중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