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신호음이 울린다
감긴 눈을 비벼뜨고 발신자를 본다
서OOᆢ
끊으면 다시 받을때까지 재발신 할테니까 폰을 이불 깊숙히
발끝께로 밀어 넣어버린다
소음을 최대한 줄이는 방편이다
일부러 끊기라도하면 전화는 계속 올것이다
그렇게 울리다 신호음은 절명한다
그러기를 두어번 하다가 발신을 포기한다
발신음은 가는데 못받는 척을해야 포기한다는걸 나는 잘 안다
OO이는 고등학교 동기동창 이다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大醉하면 반드시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낭패스러웠다
새벽잠을 깨워놓고 수십년전 얘기부터 시시콜콜 한식경이
지나도록 통화가 끝이나질 않는다
한말 또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혀꼬부라진 술주정이 끄칠줄을 모른다
이렇게 날밤을 꼬박 새는거다
이렇게 두어번 당해보니 감당할 자신이 없어지고 이놈의
통화가 저승 사자처럼 두려워졌다
저는 반갑다고 하는 추억어린 얘기겠이지만 통화가
이삼십분이 지나면서부터 정말 견디기 어려운 폭력을 당하는
기분이 올라온다
술에 취하면 생각나는 옛친구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중에 하나 그리워서 찾는 친구겠지만 매정하게 이불속으로
파묻어 버리는 내가 몰인정한 인간인가 반문해 보기도하고
죄 지은것 마냥 미안해지기도 한다
잊지못할 추억이 많은 우리 사이지만 새벽잠에 깨어 날밤 새는
일이 점점 끔찍해지는 것이다
이 행위가 그녀석의 본의아닌 酒邪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피하는 방법밖에 없는게다
OO아 낮 시간에 전화해 주라
그러나 이놈은 절대 맨 정신에는 전화 안하는 녀석임을 잘 안다
나를 몰인정한 인간 만드는 놈은 이 짓을 수십여년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지치거나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새벽에 울리는 휴대폰 신호음
유일하게 나를 기억하는 외계의 모로스 부호처럼 온몸으로
전율이 오지만
비몽사몽
나는 이불속에 안타까운 구조신호를 매몰차게 파묻어 버린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수십년 동안을 새벽녘까지 술을
먹어야 하는거냐
그리고 그 시간에 왜 날 찾아야 하는거냐
전화 못 받아줘서 미안하기는 한데
OO아...
안 받아줘도 그래도 또 전화 계속 할거지?